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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9

황토방에서 시골학교 다니기에 도전하다

시골학교에 다니기로 결정하고 2월 말 아궁이가 있고 벽과 바닥이 황토로 되어있는 옛날 시골집으로 이사를 했다. 우린 여길 황토방이라고 불렀다.

요즘 시골은 대부분 집을 새로 지어서 화장실과 부엌과 거실이 실내에 있는 구조의 집에서 산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우리 부모님도 집을 새로 지어서 살고 있다. 하지만 옛날집을 부수고 그자리에 집을 지은 게 아니라서 이 황토방이 살아있다. 이 황토방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지었고 아빠가 여기에서 자랐고 나도 여기에서 초등학교 때까지 자랐다. 성인이 되서 형제들과 만나면 가끔 황토방의 아궁이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던 기억이 있다. 아빠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 황토방이 할아버지와의 추억으로 여기시는 지 남다른 애착이 있으셔서 새로운 집에 사시면서도 계속 관리하고 수리하고 보존하고 계신다.

황토방에서의 생활은 자연과 친해져야 했다. 아이에게는 자연과 함께 지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어린 시절 내가 황토방보다 새로운 집을 좋아했던 것처럼 아이도 아파트의 깨끗하고 편리함에 익숙해 있었다. 부엌이나 화장실에 갈 때 방에서 나와 신발을 신어야 하는 불편함이 제일 컸다. 낯선 곳이기 때문에 초등학생이 혼자 화장실에 가기 무서워했다. 그래서 시골생활을 하는 동안 아이와 나는 실과 바늘처럼 항상 같이 다녀야했다.

나는 황토방이 어릴 적 살았던 곳이라 아빠의 애착까지는 아니겠지만 친숙하고 좋았다. 황토가 건강하게 해줄것 같은 기분도 들고 아궁이에 불때기도 좋은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아이도 불놀이 하는 걸로 생각해 아궁이에 불때는 시간을 좋아했다. 아궁이에 불 때고 난 후에는 무엇이든 구워 먹었다. 아궁이 숯불구이는 무조건 맛있게 변하는 요리이다. 부엌을 옛날식으로 두지 않고 아궁이와 별도로 부엌공간을 온돌로 만들어놨기 때문에 우리의 주 활동지는 마당과 부엌이 되었다. 캠핑할 때 썼던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와 부엌에서 캠핑하는 느낌으로 지냈다. 마당과 밖에서 놀이하고 운동하고 부엌 식탁에서 공부하고 식사하고 씻기를 마무리하고 잠을 자러 갈 때 방으로 들어갔다. 

아침이 밝아오기 전 마을 어르신들의 경운기 소리가 나면 조금씩 뒤척이며 일어날 준비를 한다. 창호지 방문이기 때문에 방음이 안되는 황토방이라 밤에 시끄러울 게 걱정이었지만 시골의 밤은 고요했다. 저녁무렵 개 짓는 소리가 요란할 때도 있지만 개도 밤에는 자는 동물이었다. 시골의 아침은 빨리 시작되기에 학교에 지각할 염려는 없었다. 


비오는 날에 황토방은 비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다. 잠을 방해할 것 같은 장대비가 내리는 날도 신기하게 잠을 푹 잘 잔다. 나도 아이도 잠을 설치거나 한 적이 없다. 아이도 황토방에서 자면 잠이 1분안에 들어서 눈을 감기만 했는데 아침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직 겁이 많은 아이를 위해 황토방에서 아이보다 먼저 일어나 바깥의 동정을 살피는 시간이 필요했다. 밤새 다양한 곤충들이 마당을 다녀간 흔적을 치워줘야 했다. 아파트처럼 샷시로 밖과 안의 공기를 차단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야외에 살고 있는 곤충들이 쉽게 드나들수 있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지만 집에 그런 곤충이 많이 보이는 건 싫어했다. 어른인 나도 혐오스러운 다리가 많은 다지류들은 없길 바랬지만 내가 직접 치워야했다. 살아있는 것이 더 무섭기 때문에 그리마와 지네퇴치를 위해 지네퇴지제를 구입하기도 했다. 다행히 효과가 좋아서 아침마다 죽어있는 그리마와 지네를 쉽게 치울 수 있었다. 이렇게 바깥동정을 살핀 후 엄마껌딱지인 아이를 깨우면 된다. 

아이와 같이 방에서 나와 화장실에 갔다가 부엌에 와서 아침을 차려 먹고 있으면 아빠가 황토방으로 아침인사를 온다. 손녀를 너무 좋아하는 할아버지라서 학교가기 전에 아이와 인사를 하고 싶어하셨다. 아이도 할아버지와 아침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좋아했다. 황토방에 이사와서 할아버지할머니와의 유대감도 커지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마을길을 걸어 통학버스를 타러 간다. 5분이면 버스정류장까지 여유있게 걸어갈 수 있지만 10분 정도의 여유를 갖고 출발하면 그날의 꽃과 나무를 관심있게 관찰하며 갈 수 있었다. 아이는 학교 급식도 맛있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학교가 재미있기 때문에 통학버스 타러 가는 길이 항상 즐거웠다. 통학버스에서 친구랑 같이 앉아서 놀면서 학교가는 길도 기대하곤 했다. 학교가 재미있고 학교가는 걸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시골학교로 전학오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방과후를 마치고 통학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 4시 45분 정도 된다. 아이와 한시간정도 줄넘기나 태권도, 축구를 하면서 오후시간을 보낸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라서 그런지 시골학교에서는 숙제가 없었다. 그림 그리기와 종이접기, 만들기를 좋아해 날마다 작품이 쌓여간다. 어느날은 큰 달력 종이를 연결해서 괴도로 변신했다고 황토방을 누비고 다녔다. 매일 다른 활동을 생각해 한시간의 바깥활동 하고 저녁 먹고 나면 금방 밤이다. 시골의 밤은 아침을 일찍 시작해서 인지 서울보다 빠른 것 같다.

주중엔 황토방에서 보내고 주말엔 할아버지집으로 놀러간다. 황토방에는 티비가 없었기 때문에 주중에 열심히 학교다닌 보상으로 주말엔 할아버지 집에서 티비를 실컷 본다. 할아버지집에 가면 좋은 게 또 있다. 막내이모가 쌍둥이를 출산해서 몸조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쌍둥이를 돌봐줄 수가 있었다. 유독 쌍둥이를 귀여워하고 좋아해서 할아버지집에 오면 제일 먼저 쌍둥이를 안아주고 돌봐준다. 혼자 자란 아이가 동생을 귀여워하고 돌봐주는 모습이 기특하다. 동생을 챙기고 돌봐주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아이의 정서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주말엔 하고 싶은 게 많다. 바다 탐험도 떠나고 모레놀이, 게 잡기, 고둥줍기 등 바다체험도 하고 바닷가 산책도 한다. 소라와 돌을 주워다 물감으로 색칠하기도 하고 밭의 황토흙으로 진흙만들기도 한다. 스스로 어떤 흙을 하고 싶은 정하고 퍼오고 반죽하고 꾸민다. 한가지 활동을 하더라도 자기가 생각해서 결정하고 준비하고 실행한다. 결과물이 좋을 때도 있고 생각보다 안좋을 때도 있지만 자기가 해냈다는 자존감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진흙놀이를 접하기가 쉬워서 여러번 했는데 매번 다른 방법으로 구상하여 놀았다. 동백씨가 떨어질 때 만들었던 진흙놀이인데 열리지 않은 동백씨를 이용하여 진흙을 장식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니 마르면서 동백씨가 열렸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동백씨가 진흙장식에서 열린 것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동백씨의 변화에 감동하여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하고 싶은게 끊임없이 생각나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주말이 다 지나간다. 서울에서보다 활동영역이 넓고 다양하고 자연과 함께 하니 좋은 것 같다.

아파트처럼 편리하진 않았지만 우리만의 방법으로 황토방에 적응하고 그렇게 1년을 보낸 시간이 많은 경험과 추억으로 기억되고, 하나 둘 경험하며 생각한 것들이 쌓여 아이의 인성과 감성을 풍부하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시골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아이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긍정적인 변화에 만족하기도 했지만 부모님 가까이에서 일손도 돕고 칠순도 넘은 부모님의 자주 웃는 모습을 보니 이런게 효도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와 아이에게도 막내동생과 우리 부모님에게도 알콩달콩 함께한 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는 한해가 되길 바란다.

2023-03-19

시골학교 전학와서 아이가 달라졌어요

아이의 의견으로 시골학교에 전학가서 초등학교 3학년을 보냈다. 1년간의 시골생활을 마치고 돌아보면 아이도 시골초등학교에 다녀서 너무 재미있었고 그런 아이를 지켜본 나도 시골학교에 다니길 잘 했다는 생각이다. 

시골학교 전학 1년 무엇이 좋았을까

초등학교 1, 2학년을 코로나 펜더믹과 함께 보낸 아이는 마스크의 답답함과 친구들과 뛰어놀지 못하는 것이 싫었는지 시골에서 마스크없이 마을길을 다니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다며 시골학교로 전학을 원했다. 2학년은 매일 등교를 했지만 1학기 내내 친구들이랑 쉬는 시간에 이야기 하지 말라는 규칙으로 친구한명 없었던 것이 시골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을 키웠는지 모르겠다. 2학기에는 쉬는 시간에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친구랑 놀아도 된다고 해서 늦게나마 한 명의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위드코로나로 실외마스크가 해제 되기도 했지만 시골학교 전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아이의 의견을 듣고 시골학교에 다니면 어떨까하고 찾아보니 인구가 줄어들어 시골학교에 학생수가 급감해 있었다. 강원도 산골학교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내가 다녔던 시골학교 역시 한 반이 열명이 안되고 전교생이 오십여명 뿐이었다. 아이가 시골초등학교로 전학가면서 시골초등학교에 학생이 적다는 것은 아이의 학교생활에 영향을 줄까 생각해보았다. 한 반에 학생 수가 많으면 선생님의 집중도도 떨어지고 아이들에게 수업참여 기회도 줄어들 수 있는데 적은 학생수라면 많은 기회가 아이에게 갈 것이니 수업시간이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았다. 

스쿨버스

등하교 거리가 서울처럼 가깝지 않아서 매일 자동차를 이용해야했는데 학교버스가 지원되서 마을입구에서 학교버스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갈 수 있었다. 학교버스를 같이 타고 가면서 친구하고도 친해지고 선후배와도 인사할 수 있었다. 학생수가 적은 만큼 다른 학년과 만나는 기회도 많고 친해질 기회도 많았다. 서울에서는 차 타는 것을 싫어하고 어려워 했었는데 스쿨버스에서 친구와 함께 학교가는 시간을 점점 즐기게 되었다.

방과후활동

시골에서 학교를 마치고 여러 학원을 다녀야한다면 거리면에서 불편함이 많겠지만 우리는 서울에서도 바이올린과 태권도만 보내던 터라 이 둘만 포기하면 학원문제는 크지 않았다. 시골학교에서는 모든 방과후를 전학년이 참여할 수 있었는데 아크로바틱과 뉴스포츠, 음악줄넘기 등이 있어서 태권도의 운동량을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최근에 배우기 시작한 바이올린은 8개월정도 되었는데 막 콩코르 이야기가 나올 찰라에 그만 두어야 해서 아쉬웠다. 하지만 아이는 아쉬워하지 않았고 대신 학교 방과후로 피아노와 오카리나를 배우게 되어서 바이올린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오카리나를 재미있어 했고 집에서도 오카리나를 구입해서 연습하길 좋아했고 곧잘 연주를 했다. 여러가지 악기를 다룰수 있다는 측면으로 보면 좋은 기회였다. 운동과 악기 뿐 아니라 다양한 방과후 활동을 전학년이 무료로 참여할 수 있었다.

다양한 체험활동

방과후 활동 뿐 아니라 교실 밖 체험 수업이 많았다. 교내 체험활동뿐만 아니라 교외 체험활동도 많아서 매주 다양한 체험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텃밭체험과 승마체험, 마을 연계 사업의 숲밧줄체험을 통해 자연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고장의 유적지와 체험기관이 생각보다 다양하게 많이 있었다. 기다리지 않고 많이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표현하는 걸 보면 인원이 적으니 그룹과외같기도 하고 자기의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이 짧고 말할 기회와 체험할 기회가 훨씬 많아서 좋았던 것 같다.

시골학교 생활 더보기

처음엔 학교 급식이 너무 맛있다고 학교가길 좋아했다. 정해진 예산으로 적은양의 식사를 준비하면 되니 더 좋은 재료와 영향에 신경을 쓸 것 같았다. 매일 학교에서 다양한 즐거운 일이 있으니 지루하지 않은 학교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일어나면서 오늘의 활동을 기대하며 학교에 가고 학교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학교에서 재미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느라 입이 쉬지 않았다. 학교에서 재미난 활동을 하고 온 날은 집에서도 또 해보자고 하며 스스로 배운 것을 보여줬다.

아이의 긍정적인 변화

조심성이 많고 내성적인 아이인데 시골학교를 다니며 점점 활발해지고 씩씩해졌다. 목소리도 당당하게 커졌다. 이런 아이의 긍정적인 변화를 느끼고 재미있게 학교 다니는 모습을 볼때마다 시골학교에 전학 오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2023-03-17

초등학교 3학년은 시골학교에 다녀요

3월 2일부터 통학버스를 타고 새로운 시골초등학교 3학년에 다녔다. 첫날부터 통학버스를 타고 적응하기로 했다. 아이의 반은 자기 포함해서 8명이라고 했다. 남자아이 3명 여자아이 5명인데 그나마도 코로나에 걸려 다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3월엔 일요일과 수요일 저녁에 코로나 자가검진해야 했다. 학교에서 금요일마다 신속항원검사 키트를 받아왔다. 시골이라 코로나가 적을 줄 알았는데 확률로 해보면 거의 50%가 코로나에 걸린 경험이 있었다. 인원이 적다 보니 한명만 걸려도 확률이 높았다. 일주일에 두번씩 검사를 하며 매일 등교를 했다. 

피아노, 오카리나, 방송댄스, 캘리그래피, 음악줄넘기, 사물놀이, 코딩, 아크로바틱, 영어, 놀이체육, 뉴스포츠의 다양한 방과후활동이 있었는데 매일 두 세 시간씩 방과후 활동이 진행되었다. 3학년과 4학년이 같이 진행이 되서 4학년 언니오빠와도 친하게 되었다. 방과후 활동과 별도로 일주일에 한번 동아리 활동을 했다. 이 시간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함께 해서 선후배를 만날 수 있었다. 시골학교에 다닌지 몇주가 지나자 4학년, 5학년, 6학년 언니 오빠들 이야기도 자주 했다. 아이들이 적어서 이런 방과후활동을 무료로 매일 할 수 있는 건 시골학교의 장점이다. 형제자매가 없는 우리아이가 선후배 관계를 통해 언니, 오빠, 동생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이기적이지 않은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시골학교라 그런지 교실밖 체험학습이 많았다. 물론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여러 사업을 따왔기 때문에 체험학습이 가능한 것이다.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처럼 교실에서만 공부하는 것보다 여러 체험학습으로 경험과 생각을 키우게 되어 부모입장에선 너무 좋았다. 학교에서 체험하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집에 와서 또 해보고 싶어했다. 스스로 복습하고 즐기는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스러웠다.

우리 마을 답사

체험학습 시간에 보낸 엽서


3월 어느 날, 선생님과 사회활동으로 진행된 우리마을 답사시간에 학교 주위에 있는 관공서를 직접 찾아가 기관의 역할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작은 선물까지 받아왔다. 새마을금고에서 장난감을 선물로 받기도 하고, 경찰서에서는 경찰차도 타 봤다고 했다. 우체국에서는 집으로 엽서쓰기를 진행해서 다음날 집에 엽서가 도착하기도 했다. 집주소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아버지 이름만 써도 된다고 했다고 했다며 자기는 주소를 아는데 주소를 모르는 친구도 있었다라고 했다. 시골학교로 전학오면서 우리집 주소에 대해 알려 줬던 걸 기억했던 것이다. 아버지 이름만 써도 편지가 도착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적게 사는 우리 시골이라 가능한 재미있는 일이다. 선생님께서 아이스크림도 사줘서 너무 좋았다고 마을 답사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왔다.


진달래 화전 만들기

집에서 아이가 직접 만든 진달래화전

학교 뒷산이 있는데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가끔씩 산책을 나가곤 했다. 4월 어느 봄날, 뒷산을 산책하다가 진달래가 많이 피어 있어서 진달래꽃을 따서 진달래 화전을 만들어 먹고 몇개를 집으로 들고 왔다. 집에 오자마자 진달래화전 만드는 과정을 줄줄 이야기 했다. 진달래꽃을 물로 깨끗이 씻고 키친타올로 물기를 제거해 놓고 찹쌀가루를 익반죽해서 동그랗게 빚은 다음 납작하게 눌러 후라이팬에 놓고 익으면 뒤집은 후 진달래꽃을 붙이고 익으면 꺼내는 거라고 했다. 진달래화전 만드는 과정을 알게 되었으니 엄마에게 진달래화전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너무 신나있는 아이와 함께 어디에 진달래가 많은지 동네 할머니에게 물어서 진달래꽃을 따러 갔다. 진달래꽃을 딸 때도 조심조심 예쁘게 따야 한다고 했다. 학교에서 만들었던 대로 자기가 하겠다고 엄마는 보고만 있으라고 하고는 진달래꽃을 조심조심 씻어 물기를 닦더니 열심히 익반죽도 했다. 너무 기특하고 귀여워 보고만 있었더니 그럴싸하게 진달래화전을 만들었다. 아이가 만든 진달래화전을 엄마랑 맛있게 먹는 시간을 너무 즐거워하니 기분이 좋았다.


단오체험

단오체험으로 창포물에 머리감기

단오에는 친구들과 씨름을 하고, 창포물에 머리감으면 머리가 건강해진다는 설명을 듣고 친구들이 모두 머리를 감아보는 체험을 했다. 부채와 장명루를 만들어와서 얼마 전에 태어난 사촌 동생의 건강을 빌며 장명루를 선물해주기도 했다. 요즘에는 설날과 추석 이외의 명절에 대해 잘 모를 수 있는데 단오체험을 여러가지를 하고 오더니 단오에 대해 줄줄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책으로만 단오를 배운 것과 차원이 다른 배움을 느꼈던 것이다.


직접 농사진 감자로 감자튀김 만들기

집에서 아이가 직접 만든 감자튀김

학년마다 학교 텃밭이 있었다. 정해진 자리에 선생님과 여러 농작물을 심고 키웠는데 3월엔 감자를 심는다고 했다. 6월이 되니 감자를 캐서 감자튀김을 하겠다고 필러를 준비하라고 했다. 필러가 위험할 수도 있는데 조심해서 아이들 스스로 감자를 깎아서 자르고 감자튀김을 만들었다. 여러 가지 맛의 스프가루도 준비해서 찍어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고 집에 온 아이가 감자튀김을 하자했다. 학교에서 맛있게 만들어 먹은 걸 자꾸 집에서 하자고 한다. 주말에 햇감자를 캐서 아이가 직접 학교에서 배운대로 감자튀김을 했다. 학교에서 배웠다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한다고 하며 하는 모습이 너무 대견스러웠다. 감자를 두번 튀겨야된다면서 더운 날씨에 아이가 땀흘리며 튀겨낸 감자튀김은 정말 맛있었다. 


옹기 항아리와 고추장 만들기

아이가 직접 만든 고추장과 옹기 항아리

9월 어느 날 옹기 항아리 체험을 간다고 했다. 자신의 항아리를 만들었는데 구워야해서 한달 후에 고추장만들기 체험을 하고 거기에 넣어올 거라고 했다. 한달여 후 같은 곳으로 고추장 체험을 갔고 집에 올 때 고추장을 담은 귀여운 항아리를 들고 왔다. 항아리 만드는 체험으로 끝나지 않고 항아리에 고추장을 보관하는 활동으로 연계되어 진행된 것에 감탄이 나왔다. 항아리에 자신의 싸인을 넣었다는 아이의 생각이 재미있었다.


한가위 명절 체험

한가위체험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송편 만들기 뿐만 아니라 옛날 도구들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절구로 떡매 치기와 다듬이 체험, 지게와 물지게 지기, 되에 곡식 담아보기, 물레 돌려보기, 목화솜에서 씨앗 빼기 등 일상에서 하기 어려운 옛날체험을 다양하게 할 수 있었다. 인원이 적기 때문에 우리아이가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많아서 좋고 다양한 체험이 준비되어서 좋았다. 선생님의 활동사진과 아이의 입을 통해 알게 되는 체험활동이지만 다채롭고 알차게 진행되는 것 같다.


교외 체험활동


거의 2주마다 교외체험활동도 다양하고 재미있게 진행되었다. 숲밧줄 체험, 클라이밍 체험, 우리고장 문화유산 답사, 워터파크 체험,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 체험, 잡월드, 국화축제 견학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진행했다. 2학기엔 승마체험이 정기적으로 진행되어 동물과의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처음에는 말이 너무 커서 무서웠다고 했는데 정기적으로 승마체험을 하니 무서움은 금새 극복하고 말의 이름을 불러주며 승마체험을 할 수 있었다. 승마 체험 시에는 앞의 말에 너무 가까이 가면 앞말이 뒷 발차기를 해서 위험하다고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고삐를 잘 잡고 컨트롤 해야한다는 안전수칙도 배워왔다. 

시골학교 1년

시골학교에서 1년을 다니는 동안 아이가 점점 활발해지고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 많아졌다. 전학오기 전에는 드센 시골 아이들 틈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시골친구들은 표현이 직설적이지만 순박하고 솔직했다. 매일 학교 가는 것이 즐거웠고 학교 급식도 너무 맛있다고 좋아했다. 항상 다양한 활동을 재미있어하고 즐기는 모습에 시골학교로 전학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학교에서의 다양한 경험이 아이의 성장에 좋은 경험과 추억으로 남길 바란다.



2023-03-14

시골학교로 전학가기로 했어요

시골학교 전학결심

초등학교 2학년 가을 어느날, 코로나를 피해 3학년부터 시골학교에 다니기로 결정했다. 

외할머니댁에서 자주 방학을 보냈는데 초등학교를 지날 때마다 아이에게 엄마가 다녔던 초등학교라고 말해주곤 했는데, 어느 날 엄마가 다닌 초등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가 여러번 이야기를 하길래 진심인지 궁금했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시골학교에 다니겠다는 마음은 커져가길래 왜 시골학교에 가고 싶은지 물어보니 현관을 나가면서 쓰는 마스크를 벗고 시골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시골학교도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하긴 하지만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이 적어서 시골길과 바닷가에서는 마스크 없이 다녀도 사람을 마주치기가 어렵다. 마을길과 바닷가를 온전히 우리만 다니고 놀고 할 수 있다. 코로나 2년째로 마스크를 쓰고 학교와 태권도를 다니던 아이 입에서 마스크를 벗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다고 하니 당장 시골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의식주보다도 더 기본인 공기의 소중함을 이야기 하고 있지 않은가.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큰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실행하기 어려운 일도 아닌데 반대하고 싶지 않았다. 

시골학교에 대해 알아보다

시골에 황토방이 있어서 거기에서 살면 되겠다 싶어 시골학교로 전학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시골초등학교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시골학교가 어떤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골학교는 전교생이 50명 정도였다. 영어 원어민 선생님이 있었고, 승마체험도 할 수 있었다. 방과후활동을 매일 전교생이 참여했고 다양한 체험학습이 많았다. 여러 마을을 도는 통학버스을 타고 등하교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어릴 적에는 한번에 40명이 넘었는데 이제 10명도 안된다니 기분이 좀 그랬다. 그래도 인원이 적으니 다같이 놀 수 있고 선생님과의 상호 작용도 잘되고 토론식 수업처럼 개개인에게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을 것 같았다. 아침 8시 20분에 등교해서 매일 방과후활동을 두 세가지 하고 4시 40분에 하교한다니 나의 시간도 여유로워질 것 같았다. 시골 마을마다 한두명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 같다. 동네친구가 없어서 좀 아쉽지만 4시 반까지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함께 놀면 되겠다 싶었다. 

서울생활 마무리

태권도 2품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마침 2월에 심사가 있어서 2월 2품 심사까지 마칠 수 있었기 때문에 2품에서 태권도는 그만 하기로 했다. 8개월정도 배운 바이올린이 아쉬워서 줌수업처럼 비대면으로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지만 비대면으로 배우기는 힘들것 같았다. 시골에선 학교에서 배우는 것 이외의 것을 배우기가 어렵다. 30분 이상을 자동차로 가야 시내에 있는 학원을 다닐 수 있다. 시골학교에서 방과후로 여러가지를 배우니 태권도와 바이올린을 계속하는 것은 포기하기로 하고 그동안 배운 내용을 복습하며 배운 것을 잊지 않도록 하기로 했다. 

황토방에 이사한 날 태권도 발차기

전입신고와 전학신청서

2월 말에 황토방으로 이사를 하고 주민센터에 전입신고를 하러 갔다. 전입신고를 하면서 학교에 전학을 왔다고 하고 받은 전학신청서를 챙겨서 학교를 방문하니 아이가 다닐 반을 돌아볼 수 있었다. 골격은 예전 그대로인데 페인트가 알록달록 예쁘게 칠해져있었고 교실이 깔끔하게 현대식으로 인테리어 되어있었다. 내가 다닌 학교에 내 아이가 다닌다니 내가 더 설레이는 것 같다.

엄마가 다녔던 시골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