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9

황토방에서 시골학교 다니기에 도전하다

시골학교에 다니기로 결정하고 2월 말 아궁이가 있고 벽과 바닥이 황토로 되어있는 옛날 시골집으로 이사를 했다. 우린 여길 황토방이라고 불렀다.

요즘 시골은 대부분 집을 새로 지어서 화장실과 부엌과 거실이 실내에 있는 구조의 집에서 산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우리 부모님도 집을 새로 지어서 살고 있다. 하지만 옛날집을 부수고 그자리에 집을 지은 게 아니라서 이 황토방이 살아있다. 이 황토방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지었고 아빠가 여기에서 자랐고 나도 여기에서 초등학교 때까지 자랐다. 성인이 되서 형제들과 만나면 가끔 황토방의 아궁이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던 기억이 있다. 아빠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 황토방이 할아버지와의 추억으로 여기시는 지 남다른 애착이 있으셔서 새로운 집에 사시면서도 계속 관리하고 수리하고 보존하고 계신다.

황토방에서의 생활은 자연과 친해져야 했다. 아이에게는 자연과 함께 지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어린 시절 내가 황토방보다 새로운 집을 좋아했던 것처럼 아이도 아파트의 깨끗하고 편리함에 익숙해 있었다. 부엌이나 화장실에 갈 때 방에서 나와 신발을 신어야 하는 불편함이 제일 컸다. 낯선 곳이기 때문에 초등학생이 혼자 화장실에 가기 무서워했다. 그래서 시골생활을 하는 동안 아이와 나는 실과 바늘처럼 항상 같이 다녀야했다.

나는 황토방이 어릴 적 살았던 곳이라 아빠의 애착까지는 아니겠지만 친숙하고 좋았다. 황토가 건강하게 해줄것 같은 기분도 들고 아궁이에 불때기도 좋은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아이도 불놀이 하는 걸로 생각해 아궁이에 불때는 시간을 좋아했다. 아궁이에 불 때고 난 후에는 무엇이든 구워 먹었다. 아궁이 숯불구이는 무조건 맛있게 변하는 요리이다. 부엌을 옛날식으로 두지 않고 아궁이와 별도로 부엌공간을 온돌로 만들어놨기 때문에 우리의 주 활동지는 마당과 부엌이 되었다. 캠핑할 때 썼던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와 부엌에서 캠핑하는 느낌으로 지냈다. 마당과 밖에서 놀이하고 운동하고 부엌 식탁에서 공부하고 식사하고 씻기를 마무리하고 잠을 자러 갈 때 방으로 들어갔다. 

아침이 밝아오기 전 마을 어르신들의 경운기 소리가 나면 조금씩 뒤척이며 일어날 준비를 한다. 창호지 방문이기 때문에 방음이 안되는 황토방이라 밤에 시끄러울 게 걱정이었지만 시골의 밤은 고요했다. 저녁무렵 개 짓는 소리가 요란할 때도 있지만 개도 밤에는 자는 동물이었다. 시골의 아침은 빨리 시작되기에 학교에 지각할 염려는 없었다. 


비오는 날에 황토방은 비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다. 잠을 방해할 것 같은 장대비가 내리는 날도 신기하게 잠을 푹 잘 잔다. 나도 아이도 잠을 설치거나 한 적이 없다. 아이도 황토방에서 자면 잠이 1분안에 들어서 눈을 감기만 했는데 아침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직 겁이 많은 아이를 위해 황토방에서 아이보다 먼저 일어나 바깥의 동정을 살피는 시간이 필요했다. 밤새 다양한 곤충들이 마당을 다녀간 흔적을 치워줘야 했다. 아파트처럼 샷시로 밖과 안의 공기를 차단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야외에 살고 있는 곤충들이 쉽게 드나들수 있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지만 집에 그런 곤충이 많이 보이는 건 싫어했다. 어른인 나도 혐오스러운 다리가 많은 다지류들은 없길 바랬지만 내가 직접 치워야했다. 살아있는 것이 더 무섭기 때문에 그리마와 지네퇴치를 위해 지네퇴지제를 구입하기도 했다. 다행히 효과가 좋아서 아침마다 죽어있는 그리마와 지네를 쉽게 치울 수 있었다. 이렇게 바깥동정을 살핀 후 엄마껌딱지인 아이를 깨우면 된다. 

아이와 같이 방에서 나와 화장실에 갔다가 부엌에 와서 아침을 차려 먹고 있으면 아빠가 황토방으로 아침인사를 온다. 손녀를 너무 좋아하는 할아버지라서 학교가기 전에 아이와 인사를 하고 싶어하셨다. 아이도 할아버지와 아침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좋아했다. 황토방에 이사와서 할아버지할머니와의 유대감도 커지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마을길을 걸어 통학버스를 타러 간다. 5분이면 버스정류장까지 여유있게 걸어갈 수 있지만 10분 정도의 여유를 갖고 출발하면 그날의 꽃과 나무를 관심있게 관찰하며 갈 수 있었다. 아이는 학교 급식도 맛있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학교가 재미있기 때문에 통학버스 타러 가는 길이 항상 즐거웠다. 통학버스에서 친구랑 같이 앉아서 놀면서 학교가는 길도 기대하곤 했다. 학교가 재미있고 학교가는 걸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시골학교로 전학오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방과후를 마치고 통학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 4시 45분 정도 된다. 아이와 한시간정도 줄넘기나 태권도, 축구를 하면서 오후시간을 보낸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라서 그런지 시골학교에서는 숙제가 없었다. 그림 그리기와 종이접기, 만들기를 좋아해 날마다 작품이 쌓여간다. 어느날은 큰 달력 종이를 연결해서 괴도로 변신했다고 황토방을 누비고 다녔다. 매일 다른 활동을 생각해 한시간의 바깥활동 하고 저녁 먹고 나면 금방 밤이다. 시골의 밤은 아침을 일찍 시작해서 인지 서울보다 빠른 것 같다.

주중엔 황토방에서 보내고 주말엔 할아버지집으로 놀러간다. 황토방에는 티비가 없었기 때문에 주중에 열심히 학교다닌 보상으로 주말엔 할아버지 집에서 티비를 실컷 본다. 할아버지집에 가면 좋은 게 또 있다. 막내이모가 쌍둥이를 출산해서 몸조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쌍둥이를 돌봐줄 수가 있었다. 유독 쌍둥이를 귀여워하고 좋아해서 할아버지집에 오면 제일 먼저 쌍둥이를 안아주고 돌봐준다. 혼자 자란 아이가 동생을 귀여워하고 돌봐주는 모습이 기특하다. 동생을 챙기고 돌봐주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아이의 정서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주말엔 하고 싶은 게 많다. 바다 탐험도 떠나고 모레놀이, 게 잡기, 고둥줍기 등 바다체험도 하고 바닷가 산책도 한다. 소라와 돌을 주워다 물감으로 색칠하기도 하고 밭의 황토흙으로 진흙만들기도 한다. 스스로 어떤 흙을 하고 싶은 정하고 퍼오고 반죽하고 꾸민다. 한가지 활동을 하더라도 자기가 생각해서 결정하고 준비하고 실행한다. 결과물이 좋을 때도 있고 생각보다 안좋을 때도 있지만 자기가 해냈다는 자존감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진흙놀이를 접하기가 쉬워서 여러번 했는데 매번 다른 방법으로 구상하여 놀았다. 동백씨가 떨어질 때 만들었던 진흙놀이인데 열리지 않은 동백씨를 이용하여 진흙을 장식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니 마르면서 동백씨가 열렸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동백씨가 진흙장식에서 열린 것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동백씨의 변화에 감동하여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하고 싶은게 끊임없이 생각나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주말이 다 지나간다. 서울에서보다 활동영역이 넓고 다양하고 자연과 함께 하니 좋은 것 같다.

아파트처럼 편리하진 않았지만 우리만의 방법으로 황토방에 적응하고 그렇게 1년을 보낸 시간이 많은 경험과 추억으로 기억되고, 하나 둘 경험하며 생각한 것들이 쌓여 아이의 인성과 감성을 풍부하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시골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아이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긍정적인 변화에 만족하기도 했지만 부모님 가까이에서 일손도 돕고 칠순도 넘은 부모님의 자주 웃는 모습을 보니 이런게 효도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와 아이에게도 막내동생과 우리 부모님에게도 알콩달콩 함께한 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는 한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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