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 추천했다는 모비딕을 읽었다.
연말에 만난 조카가 책을 산다며 핸드폰을 하고 있길래 무슨 책을 사려고 하냐고 물어봤더니 한동훈이 추천하는 모비딕을 읽어보려고 하는데 300페이지 짜리와 700페이지 짜리 책중에 어떤걸 살지 고민이라고 했다. 조차는 이제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700 페이지 책을 읽어야하는 거 아냐? 라고 모비딕의 난해함을 알지도 못하고 말해버렸다. 모비딕이 어떤 책이길래 한동훈이 왜 모비딕을 추천했는지 궁금했다. 모비딕에 대한 소개나 후기를 찾아보지 않고 밀리의 서재에서 찾아 덥석 읽기로 했다.
모비딕 |
모비딕은 고래잡이 이야기와 백과사전같은 고래학에 관한 내용이 함께 섞여있었다. 그 당시에는 아직 고래에대한 분류법이 없었기 때문에 제32장 고래학에서 체계적인 분류법으로 분류하기를 시도하고 있다.
분류법을 제시하는 목적을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이제 고래의 다양한 종種을 분류하는 대중적이고 포괄적인 분류법이 필요하다. 지금은 우선 간단한 윤곽만 만들어놓고, 나중에 후세 연구자들이 모든 항목을 채워 넣으면 된다. 이 일을 자진해서 맡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변변치는 못하지만 내가 한번 시도해보려고 한다. 물론 완전한 것을 약속하지는 않는다. 인간사에서 완전해야 하는 일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반드시 불완전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고래의 다양한 종을 해부학적으로 세밀하게 묘사하지도 않겠다. 아니, 적어도 여기서는 고래를 별로 묘사하지 않을 작정이다. 여기서 내 목적은 단지 고래학의 체계에 관한 밑그림을 제시하는 것뿐이다. 나는 건축가이지 건축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아래와 같이 무리 전체를 크게 분류하기 위한 기준을 세웠다.
첫째, 나는 고래를 크기에 따라 세 개의 기본적인 ‘권卷’으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장章’으로 세분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크고 작은 고래가 모두 포함될 것이다.
(1) 2절판 고래, (2) 8절판 고래, (3) 12절판 고래.88
나는 2절판 고래의 전형으로는 향유고래, 8절판 고래의 전형으로는 솔잎돌고래, 12절판 고래의 전형으로는 돌고래를 제시하겠다.
고래잡이 포경선의 이야기를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위와 같은 고래학이 틈틈히 등장한다. 흡사 백과사전에 나올법한 내용이 소설 중간중간 나오며 흐름이 끊기기도 했지만 당시의 고래학 발전에 참고자료로 이용되어질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모비딕의 고래잡이 이야기는 관찰자로 등장하는 이슈메일이 만나는 식인종의 등장으로 초반의 흥미를 사로잡았다. 고래잡이 배에 탄 구성원들이 모두 흥미진진한 특색이 있었고 고래잡이를 하며 일어나는 망망대해의 스토리는 재미있었다. 모비딕에 의해 다리를 잃은 선장의 고집으로 충분한 향유기름을 얻었음에도 복수를 위해 무리하게 모비딕을 쫒는 부분에서 비극을 예상할 수 있었다. 포경선에서 선장의 독단적인 결정에 선원들이 따를 수 밖에 없는 운명과 선원들의 생명을 담보로 복수에 나서는 선장의 모습에는 성공을 기대할 수 없었다. 40년을 고래잡이로 살아온 에이해브가 능숙하게 고래의 경로를 추적하는 모습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날씨와 고래의 속도와 습성등을 종합하여 다음에 나타날 시간과 위치를 예측하는 모습은 대단하다.
모비딕이 고래잡이 배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고래잡이를 인생으로 본다면 에이해브처럼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복수의 칼을 갈고 복수를 준비하고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복수가 성공하는 일도 드물고 복수는 복수를 나으며 끝이 행복한 경우는 없다. 복수의 복수를 이야기하니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도 생각난다. 살아가면서 내가 피해를 주는 경우도 많고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지만 이것을 복수하겠다는 마음보다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고래잡이 포경선에서 고래에게 다리를 잃은 선장의 복수심에 찬 모비딕을 쫒는 이야기는 비극으로 작가를 제외한 모든 선원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에이해브는 동물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모비딕은 오히려 에이해브에게 공격을 당했고 아파서 버둥거렸었던 것 뿐일 수 있다. 만약 계단을 내려오다가 굴렀다고 복수하겠다는 마음으로 계단을 부수어 버리는 것과 같은 행동이 아닐까. 유연함과 순리를 따르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요즘 에이해브의 꺾이지 않는 복수심은 아타까울뿐이다.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 마음이 성실하고 옮고 그름을 잘 알지만 선장에게 대들거나 하지 않는다. 제 109 장 선장실의 에이해브와 스타벅편에서 기름이 새고 있을 때 기름을 퍼내기 위해 선장실에 보고하지만 선장을 기름을 퍼내고 수리하기 위해서 시일을 소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성내는 에이해브를 향해 침착하게 기름을 퍼내야한다고 부탁하지만 에이해브는 권총을 들이대며 소리지른다. 이때 스타벅의 침착한 태도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그는 격정을 억누르고 비교적 침착하게 돌아서서 선실을 나가려다가 잠깐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선장님은 저를 모욕한 게 아니라 화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저를 경계할 필요는 없습니다. 선장님은 웃을지 모르지만, 에이해브는 에이해브를 경계해야 합니다. 영감님, 자신을 조심하십시오.”
지속적으로 선장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마지막까지 선장과 함께 한다. 132장 교향곡에서 에이해브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저의 메리, 저의 메리도 그래요! 메리는 아침마다 제 아들을 데리고 언덕에 올라가서 바다에서 돌아오는 아버지 배의 돛을 맨 먼저 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지요. 예! 예! 이제 끝났습니다. 다 됐어요! 우리는 낸터컷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선장님. 진로를 정하고 떠납시다. 보여요, 보여! 창문으로 내다보는 아들 녀석의 얼굴이 보여요! 언덕 위에서 아들 녀석이 손을 흔드는 게 보여요!”
그러나 에이해브는 눈을 돌리고, 마른 과일나무처럼 몸을 떨다가 다 타버린 마지막 사과를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하지만 안타깝게 수십년을 악으로 복수의 칼을 갈아온 에이해브의 목표는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복수에 빠진 선장에게 모든 선원의 생명이 담보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등항해사인 스타벅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퀴퀘그가 등장할 때마다 식인종이지만 심성이 악하지 않은 그를 응원하게 된다. 기름통에 빠진 동료를 구할 때도 퀴퀘그는 용감하게 뛰어 들어 타슈테고를 구해냈다. 기름통이 새서 기름을 퍼내는 작업을 하던 중 퀴퀘그가 열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갔을 때도 관까지 짰지만 살아날 것을 믿었다. 그 관은 나중에 이슈메일이 살아날 수 있는 구명부표가 되었기에 퀴퀘그 덕분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동훈이 모비딕을 추천한 이유는 스타벅과 에이해브의 상황을 정당으로, 우리의 인생으로 확대해서 생각해보길 바란 것이 아닐까
우선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는 사람 앞에서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스타벅의 행동은 본받고 싶다. 살면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수없이 만난다. 회사에 다니다 팀장이나 팀원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퇴사하기도 한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과 의견이 맞지 않아 틀어지는 경우도 많다. 만남과 헤어짐은 자연스럽지만 다툼이 있을 때 스타벅처럼 침착한 대응을 하고 싶다.
거의 두달 동안 조금씩 읽었다. 고래학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내용이 어려워 중간에 포기할 생각을 여러번 했다. 하지만 요즘 재미 위주의 쉬운책만 읽었던 것을 반성하며 계속 읽기를 시도했다. 이번 한번으로 끝내지 않고 다음에 또 읽겠다는 생각으로 어려운 내용을 한번에 모두 이해하려하지 않았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읽었더니 완독에 성공했다. 어려웠던 책이고 여러번 포기하려던 책이기에 완독했을 때 뿌듯함이 컸다.
0 comments:
댓글 쓰기